2009년 09월 05일
간도 - 지현룡의 상소
요즘 간도영유권 문제로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이글루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생각난게 조선 고종때의 지현룡의 상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종 21권, 21년(1884 갑신 / 청 광서(光緖) 10년) 6월 17일(기축) 5번째기사
친기위의 일 등에 관하여 지현룡이 상소하다의 일부.
부호군(副護軍) 지현룡(池見龍)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함경도(咸鏡道) 변경에서 나서 자랐으니, 함경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두만강(豆滿江) 북쪽과 백두산(白頭山) 아래의 분수령(分水嶺)을 기준으로 동쪽, 남쪽,
서쪽으로 1,000여 리 둘레의 비옥한 땅은 바로 선덕(宣德) 연간에 절제사(節制使) 김종서
(金宗瑞)가 강토를 개척하여 목책(木柵)을 세운 지대이며, 지금 경원부(慶源府) 동북쪽 700리와
선춘령(先春嶺) 이남의 2,000여 리 둘레의 땅은 바로 고려(高麗) 때 시중(侍中) 윤관(尹瓘)이
고을을 설치하고 성을 쌓은 지대입니다.
강희(康熙) 계미년(1703)에 오라 총관(烏喇總管) 목극등(穆克登)이 칙지(勅旨)를 받들어 변방을
조사할 때에 돌을 캐어 비석을 세워 ‘서쪽은 압록강(鴨綠江)이고 동쪽은 토문강(土門江)이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에 이것은 실제로 중국에서 경계를 정해서 땅을 갈라놓은 것인데 까닭 없이
그 땅을 상국(上國)에 돌려준 것은 본디 예가 아닙니다. 삼가 바라건대, 상국에 자문(咨文)으로
진달하여 기어코 얻어냄으로써 영토를 넓히기 바랍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조선말기까지도 간도를 명확히 조선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적 경과 그리고
토문강이란 글귀에만 의존해서 청나라에서 얻어내야한다고만 말하고 있다.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아 다른게 있기는 하다 간도협약. 그러나 이것은 청과 일본의 문제이지
우리와는 상관없지 않은가? 일본인이 그린 당시 지도를 보면 일본 또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고,간도협약. 이것은 제2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일본이 한,청간의
국경문제를 빌미로 간도지역을 차지하고 돌려줬던 것 한마디로 일본의 장난에 불과한 것에 놀아나는 것
좀 우습지 않나?
# by | 2009/09/05 19:55 | 트랙백 | 덧글(2)




